현대사회와 자아의 실존적 인식

현대사회와 자아의 실존적 인식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이창훈은 다양한 매체들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사진, 영상, 설치 등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펼쳐 놓는다.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 안에는 현대인들의 소통 방식과 더불어 존재론적인 불안 심리를 함께 내재하고 있는데 이는 고독한 개인의 초상을 정교하게 해부함과 동시에 물신주의의 폐해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공간적 배경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외로움에 대한 문제를 이창훈은 단절과 소통이라는 상반된 두 단어의 의미를 통해 표현한다.

이창훈의 작품 [between V and R, 2012]에서는 대형 광고 스크린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성의 영상과 그것을 인식 못하고 무심히 지나가는 일상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소통을 원하거나 또는 원치 않더라도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사회집단 내의 자아 및 타자 간의 소외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창훈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실존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한다. 여기서 인간 실존이란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자신이 존재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개인화된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는 점점 사물화 되며 소외되고 있다. 모든 것이 정보화되고 기술화되는 현대 사회의 극대화된 인디비주얼리즘은 더욱 더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키며 개인과 다자간의 유기적 소통을 결여시킨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부족,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간은 소외되어 가고 있다. 이창훈은 작품 전반에서 현대인의 인격적 유대 관계의 상실로 인한 소외와 불안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항상 자신을 경계에 놓는다. 가상과 현실, 자신의 이상적 삶과 현실적 삶 사이에 자기 자신을 놓는 것은 오히려 두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닌, 두 영역 안에 속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개인의 허무의식을 표현함과 동시에 의식적으로 존재적 감수성을 표출하며 현대인들의 도시적 삶에 우회적 수법으로 자신의 실존적 의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또 다른 이창훈의 최근작인 [1프레임 시리즈, 2011-]에서는 장시간의 영상작업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압축시킨다. 한 편의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형상적 이미지들이 줄거리를 가지고 나열되지만 이것이 하나의 레이어로 압축되는 순간, 시간성은 무의미해지고 줄거리는 파괴되며. 모호한 형상만이 남게 된다. 이는 구상적 이미지와 시간성을 추상적 이미지와 순간으로 압축하며 그 둘 사이의 관계성을 관객들로 하여금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즉 유동적 시간인 현실의 삶을 부동적 순간으로 바라보게 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과 정체성 사이에서 오는 많은 의문들을 제시한다.

이창훈의 작품은 현대 문명사회가 주는 풍요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되는지와, 역설적인 맥락에서 이 풍요로움의 이면에 자리 잡은 공허함과 익명성, 더 나아가 잘못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효율성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인간관계의 단절 현상에 대해 현대인이 풀어야 할 과제를 제안하고 있다. 이창훈은 그의 작품을 통해 점차 타인과 무관심한 ‘사회’, 그 사회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숨 쉬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론적인 ‘자신’의 인식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해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다.